진정한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열방을 향한 축복의 통로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그대로 두지 않으셨지만, 심판만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심판 너머에는 메시아를 통해 이루실 평화의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역시 평화를 이루는 사람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돌아서면 쉽게 잊어버리고, 가까운 가족과 직장, 공동체 안에서도 관계 하나 지키기 어렵습니다.
'내가 어떻게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미가 5장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줍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평화의 나라는 어떤 모습이며, 그 나라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평화의 나라는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다 (2-6절)
① 베들레헴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메시아는 크고 화려한 예루살렘이 아니라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을 예언합니다.
베들레헴은 룻과 보아스의 이야기가 있었던 곳입니다. 영적으로 가장 어두웠던 사사 시대에도 하나님은 그곳에서 은혜의 역사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세상은 큰 것을 선택하지만 하나님은 가장 작은 곳에서 가장 위대한 구원을 시작하십니다.
② 영원 전부터 준비된 구원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여기서 **'상고(上古)'**는 단순히 오래전이 아니라 태초 이전, 영원 전부터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우연히 시작된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준비하신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또 미가는 포로 생활을 해산의 고통에 비유합니다.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고통은 끝이 아니라 새 생명을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영원부터 준비하신 왕을 보내셔서 자신의 백성을 다스리십니다.
③ 참된 왕은 목자이시다
메시아는 자신의 백성을
푸른 초장으로 먹이시는 목자
가 되십니다.
또한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이라는 표현은 여러 해석이 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세우신 통치자가 자기 백성을 끝까지 보호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평화는 무력이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조건 없는 은혜로 자기 백성을 살려 내시는 평화입니다.
④ 은혜 안에 거하는 삶
4절에는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거주하다'라는 히브리어는 단순히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깊이 뿌리내려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 1편의 말씀처럼
"시냇가에 심은 나무"
와 같은 삶입니다.
철 따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나무처럼 하나님의 은혜 안에 깊이 뿌리내린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묵상
오늘 나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 속에 휩쓸려 살아가고 있는가?
은혜 안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면 결국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흘려보낼 수도 없습니다.
2.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7-9절)
① 이슬과 단비 같은 사람
7절은 하나님의 백성을
이슬과 단비
에 비유합니다.
이슬과 단비는 조용히 생명을 살립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물가의 여인을 다른 사람들이 보던 시선으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정죄하지 않으셨고 은혜로 품으셨습니다.
우리 역시 사람을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의 눈으로 바라볼 때 관계의 벽이 허물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결국 은혜를 흘려보내는 사람이 됩니다.
② 젊은 사자 같은 사람
8절은 하나님의 백성을
젊은 사자
에 비유합니다.
이것은 폭력적인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니라
진리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을 의미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편에 서는 용기입니다.
덴마크의 신학자 **카이 뭉크(Kaj Munk)**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양이기도 하고 사자이기도 하며 물고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카멜레온이었던 적은 없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화평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사자처럼 진리를 붙들지 않고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따라 자신의 신앙을 감추기 때문입니다.
세상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사람이 결국 참된 평화를 만들어 갑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우상을 무너뜨리신다 (10-15절)
10절 이후 하나님은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멸절하리라."
"무너뜨리리라."
"끊으리라."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시는 것은 우상입니다.
우상의 가장 큰 특징은
즉시 안전을 약속하고 즉시 만족을 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점집과 운세를 찾는 이유도 같습니다.
미래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불안하니까 눈에 보이는 안전장치를 붙잡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겉으로는 든든해 보이지만 속은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광야는 은혜의 시간이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가짜 안전장치를 무너뜨리기 위해 광야를 허락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몸은 애굽을 떠났지만 마음은 아직 애굽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시키셨습니다.
요셉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채색옷에서 노예의 옷으로,
노예의 옷에서 죄수의 옷으로 바뀌었습니다.
모든 희망이 무너진 것 같았지만 성경은 그 시간을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으로 말합니다.
왜일까요?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가장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당장의 안전을 약속받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구원을 붙드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우리는 불안하기 때문에 관계 속에 벽을 세웁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마음을 닫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고, 이제 우리에게도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마태복음 5:9)
화평케 하는 삶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때로는 손해 보는 것 같고,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삶을 통해 우리를 보며
"정말 하나님의 자녀답다."
라고 인정하게 됩니다.
적용
1. 하나님의 은혜 안에 깊이 뿌리내리자.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세워야 합니다.
2. 이슬과 단비 같은 사람이 되자.
정죄보다 은혜를, 비난보다 긍휼을 흘려보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사자처럼 담대하게 진리를 지키자.
세상에 따라 변하는 카멜레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우상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붙들자.
내가 의지하는 돈, 성공, 인정, 사람보다 하나님 한 분을 가장 큰 안전으로 삼아야 합니다.
5. 화평케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화목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가정과 교회, 직장과 세상 속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마무리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평화의 나라는 은혜로 시작되고, 은혜에 뿌리내린 사람들이 세상에 은혜를 흘려보낼 때 확장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깊이 거하며, 이슬과 단비처럼 생명을 살리고, 사자처럼 진리를 붙들며, 우상을 내려놓고 화평을 이루는 삶을 살아갈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평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