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5장 앞부분에서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을 다시 만나고 언약을 재확인 받는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다시 확인해 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언약을 이어가실 것을 약속하신다.
35장 후반부는 벧엘의 은혜를 경험한 야곱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변화되고 성장해 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아들의 중대한 죄, 아버지의 죽음이 이어진다.
본문은 인생의 어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에 성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고난을 어떻게 통과하는지를 보여준다.

1. 베노니를 베냐민으로 바꾸는 야곱 (16-20절)
벧엘을 떠난 야곱의 가족은 에브랏,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 있었다.
그때 라헬이 난산을 겪게 된다.
산파는 라헬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또 아들을 얻었느니라."
왜 산파는 "또 아들"이라고 말했을까?
라헬은 오래전부터 자녀를 간절히 원했다.
요셉을 낳은 후에도 "여호와께서 내게 다른 아들을 더하시기를 원하노라"(창 30:24)라고 기도했다.
이것은 라헬의 오랜 소망이었다.
하나님은 즉시 응답하지 않으셨지만 수년의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러나 그 응답의 순간 라헬은 생명을 잃게 된다.
라헬은 죽어가면서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부른다.
베노니는 "내 슬픔의 아들", "고통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야곱은 그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이라 부른다.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 "영광과 힘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는 큰 슬픔 속에서도 아들의 미래를 저주나 슬픔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은혜와 소망의 이름을 주었다.
성경에서 야곱이 직접 이름을 바꾸어 준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이 부분이다.
과거의 야곱이었다면 상실과 슬픔에 묶였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슬픔을 넘어 믿음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본문은 또한 라헬의 무덤을 언급한다.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하던 시대까지도 사람들은 그 무덤을 알고 있었다.
야곱이 얼마나 라헬을 사랑했고 기억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2. 르우벤의 큰 죄와 침묵하는 이스라엘 (21-26절)
라헬의 죽음 이후 또 다른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장자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성적인 죄가 아니다.
당시 문화에서 아버지의 후궁을 취하는 행위는 아버지의 권위를 빼앗고 가문의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정치적 행동이었다.
더욱이 율법 시대에는 사형에 해당할 만큼 심각한 죄였다.
성경은 짧게 기록한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씨름하고 새 이름을 받은 언약의 사람으로서 이 사건을 마주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야곱은 즉시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결코 잊지도 않는다.
훗날 창세기 49장에서 그는 르우벤에게 장자권을 주지 않는다.
르우벤은 장자였지만 장자답게 행동하지 못했다.
야곱은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모습을 보인다.
성장은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3. 아버지 이삭의 죽음과 형제의 화해 (27-29절)
야곱은 마침내 헤브론에 도착한다.
그곳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머물렀던 언약의 땅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버지 이삭의 죽음을 맞이한다.
흥미로운 것은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다.
에서와 야곱이 함께 이삭을 장사한다.
창세기 33장에서 두 사람은 이미 화해했다.
그러나 이번 장면은 그 화해가 일회성 감정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진정한 용서는 다시 만날 수 있는 용기이다.
많은 사람들은 용서했다고 말하지만 서로를 피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야곱과 에서는 함께 아버지를 장사한다.
이 장면은 관계의 회복이 실제 삶 속에서 지속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어떻게 야곱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본문에는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이 있다.
아들의 배신도 있다.
아버지의 죽음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려움뿐이다.
그러나 야곱은 이전과 다른 사람으로 반응한다.
왜일까?
하나님께서 야곱을 바꾸셨기 때문이다.
벧엘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다시 찾아오셨고 언약을 재확인해 주셨다.
야곱은 자신의 힘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변화시킨 것이다.
왜 열두 아들의 명단을 기록하는가?
본문 마지막에는 야곱의 열두 아들이 다시 기록된다.
사실 그들의 가정을 살펴보면 자랑할 것이 많지 않다.
시기와 질투가 있었고,
속임수와 갈등이 있었으며,
르우벤과 같은 중대한 죄도 있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들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으로 사용하신다.
이것은 인간의 위대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을 붙드셨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자랑할 것은 많지 않다.
여전히 부족하고 넘어지며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야곱이 베노니를 베냐민으로 바꾸었듯이,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고 복의 통로로 사용하신다.
이것이 창세기 35장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