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한 세대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계속해서 다음 세대로 물려주어야 할 믿음이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
창세기 24장 28–67절은
아브라함의 종, 리브가, 이삭이라는 세 인물을 통해
신앙이 어떻게 이어지고, 어떤 사람을 통해 전수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본문을 통해 우리는
‘신앙의 전달자’로서 우리의 자리를 다시 묻게 된다.

1. 28–49절 | 이야기꾼, 아브라함의 종
아브라함의 종은 이야기꾼이다.
그는 “내 말을 다 하기 전에는 먹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전할 기회를 요청한다.
라반은 그에게 말할 기회를 준다.
그리고 종은 34–48절에서
우물가에서 일어났던 일을 그대로 다시 이야기한다.
“저는 아브라함의 종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인의 길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 일어난 사건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한 고백이다.
-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 어떻게 형통하게 하셨는지
- 어떻게 택하시고 바른 길로 이끄셨는지
이야기꾼 아브라함의 종은
자신의 삶 속에서 경험한 신앙의 역사,
하나님의 섭리와 동행의 은혜를 말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언약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이 살아 있다.
성경 속 많은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목자들, 동방박사들 역시
신학적 진술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은혜의 이야기를 전한다.
신앙은 논문으로 전수되지 않는다.
세대와 세대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 한 사람을 환대하는 일
한 사람을 맞이하는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처럼,
한 사람을 환대하는 일은 어마어마하게 귀한 일이다.
하나님의 손길은 종종 그렇게 찾아온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필연 같은 만남,
우리는 그것을 세렌디피티, 하나님의 섭리라 부른다.
2. 49–60절 | 결단의 사람, 리브가
아브라함의 종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당신들이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내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알려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로 하여금 좌로나 우로나 행하게 해주십시오.”
이에 라반과 브두엘은 말한다.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가 가부를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마침내 리브가에게 묻는다.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겠느냐?”
리브가의 대답은 분명하다.
“가겠나이다.”
리브가는 결단의 사람이다.
그녀는 즉각적으로 순종한다.
리브가는 단지 결단만 한 사람이 아니다.
소녀였지만 가정을 섬길 줄 알았고,
낯선 이를 환대할 줄 아는 배려와 성품을 갖춘 사람이었다.
성품도, 영성도 모두 갖춘 여인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녀가 떠나지 않았다면
그저 “좋은 사람”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결단하는 사람이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는 확장된다.

▶ 결단이 요구되는 순간
예수님의 길이 어떤 길인지 우리는 안다.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 걷는 것은 다르다.
십자가를 지는 결단,
따라가는 결단이 있을 때
그 모든 은혜와 열매가 주어진다.
왜 떠날 때 옛 습관과 옛 자랑을 버리는가?
그보다 더 큰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신앙은 늘 결단의 순간을 요구한다.
- 수련회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 나를 죽이는 훈련을 시키는 교회를 선택할 것인가
- 나의 욕망을 채워주는 교회를 선택할 것인가
세상은 후자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결단은 전자다.
우리는 단순한 성도, 신자에 머물지 않고
제자의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때로는 신앙의 대차대조표를 그려봐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즉각적인 순종이 필요하다.
3. 61–67절 | 사랑꾼, 이삭
마침내 장면은 이삭에게로 옮겨진다.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우물’이 있는 곳에 있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낙타들이 오는 것을 보았다.”
이삭은 묵상하는 사람이었다.
리브가는 그를 보고 낙타에서 내려
너울로 얼굴을 가린다.
종은 자신이 행한 모든 일을 이삭에게 아뢴다.
그리고 이삭은 리브가를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인도해 아내로 맞이한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삭이 리브가를 사랑하였으므로
어머니의 죽음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이삭은 아내를 사랑한 사람이다.
그는 리브가를 집안의 어머니로 인정했고,
오직 리브가만을 사랑했다.
이삭의 웃음은 어쩌면 여기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 결혼과 공동체의 본질
결혼의 본질은 기능도, 사명도 아니다.
사랑이다.
그래야 위로가 있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비전과 사명, 놀라운 계획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 사랑이 빠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다.
교회에서
위로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사랑도 위로도 없다면, 교회가 아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묻고 계신다.
“너도 가겠느냐?”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야기로, 결단으로, 사랑으로
신앙을 이어갈 차례는 이제 우리다.
[설교노트] 창세기 22장 1~24절 | 이삭을 잃어야 이삭을 얻는 믿음의 역설
✅ 본문 정리 & 묵상 요약1. 이삭을 잃어야 이삭을 얻는 믿음의 역설 (창 22:1–2)창세기 22장은 12장부터 21장까지 이어진 아브라함의 작은 순종들이 쌓여, 마침내 믿음의 절정에 이르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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